세상을 연결한 여성들

💬 재키 플레밍의 <여자라는 문제>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여자들은 수천 년 동안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서로를 끌어내 구해주고 있다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누락된 역사의 페이지에서 여자아이들의 우상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을 끄집어내는 책. 프로그래밍은 여성의 일로 시작해서 번듯한 엔지니어링의 한 분야가 되는 순간 남성의 영역으로 넘어갔고, 오늘날 일반적인 컴퓨터과학과의 성비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저자가 에이다 러브레이스에게 하고 싶다고 적어낸 말을 나도 적어두고 싶다. 당신의 손녀와 증손녀들은 끈기있게 일하고 세상을 바꾸고 누군가에게 공을 뺏기고 지워지겠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과 그들이 기억되는 순간이 올 것이고, “당신의 가장 무모한 상상조차 뛰어넘는 기계의 이야기가, 왕국의 중심에 모셔진 책상에서 10대 소녀들에 의해 수백번 쓰일 것입니다.”


🔖 (서문) 사람들은 줄을 서서 나와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전달한 역사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내 책을 나에게 내밀면서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딸이나 남매, 여성 동료나 아내에게 바친다고 써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하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자신이 차지한 자리의 힘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또한 새로 알게 된 역사 지식으로 그들의 산업 분야에서 여성을 위한 밝은 미래를 꾀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에도 그 일을 자신의 삶 속에 있는 여성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기꺼이 따님에게 드리는 헌사를 써드리죠.” 내가 한 남성에게 말했다. “당신이 먼저 이 책을 읽는다면요.”


🔖 말년에 에이다는 찰스 배비지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제가 시인이었던 아버지다보다 훨씬 대단한 분석가(그리고 형이상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시인과 분석가의 피가 둘 다 흐르니까요.” (...) 그녀가 배비지와 어머니와 많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수학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극심한 불안에 빠진 여성을 만날 수 있다. 에이다는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확신했다.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집에서 가르치며 주입한 뛰어난 추론 능력과, 부재했던 아버지의 유산인 “숨겨진 것들에 대한 직관적 인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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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기관은 결국 완성되지 못했지만 컴퓨터 시대의 기본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다. 입력, 저장, 처리, 출력이라는 해석기관 설계의 네 가지 구성 요소는 오늘날 모든 컴퓨터의 핵심 구성 요소로 남아 있고, 에이다가 이 새로운 기계를 설명하기 위해 준비한 독창적인 주해는 거의 한 세기를 앞선 최초의 컴퓨터 과학 무헌이다. 해석기관이 어떻게 “인간의 손과 머리”의 힘을 빌리지 않고 베르누이 수를 계산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에이다는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라 여기는 수학 증명을 썼고, 이는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기계를 위한 것이었다. 에이다는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메나브레아의 논문에 대한 주해를 자신의 첫 아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초고 작성을 마치면서 배비지에게 “그는 대단히 훌륭한 아기에요. 보기 드문 풍채와 힘을 가진 남자로 성장할 겁니다”라고 편지를 썼다.

이것은 자신의 작품을 남성으로 지칭하고 성명이 아닌 이니셜로만 서명한 에이다 시대의 이야기다. (...) 새디 플랜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백작 부인countess도 셈을 하면count 안 되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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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의 서신을 읽으면서 나는 수 세기를 뛰어넘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맞아요. 당신 말고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후계자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손녀와 증손녀들이죠.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언제나처럼 끈기 있게 집중해 멈추지 않고 일할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공을 차지할 거예요. 하지만 언젠간 더는 그러지 못하는 순간이 오겠죠. 그날이 오면 당신의 역사가 기록될 거예요. 당신의 가장 무모한 상상조차 뛰어넘는 기계의 이야기가, 왕국의 중심에 모셔진 책상에서 10대 소녀들에 의해 수백번 쓰일 것입니다.


🔖 하지만 베티 스타이더에게는 마지막 수가 남아 있었다. 해결할 수 없는 논리 문제에 봉착할 때면 그녀는 늘 그 문제 위에서 잤다. 베티는 그날 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긴 시간 동안 기차 안에서 포탄 문제와 다양한 해결책을 고민했다. 집에 도착해 침대 위로 몸을 던졌을 때, 그녀의 잠재의식이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1946년 2월 15일에 베티는 평소보다 실험실에 일찍 도착해 에니악으로 갔다. 결국 꿈속에서 답을 찾아낸 것이다. 이제 3,000개의 스위치 가운데 어떤 것을 재설정해야 할지, 그리고 그 스위치의 열 가지 가능한 지점 중 어떤 걸 선택해 조작해야 할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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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악이 “정확히 15초 만에” 해결했다는 주장은, 그것이 무지의 소치였든 고의적인 묵살이었든 이날의 시연이 사람들 앞에서 문제가 컴퓨터에 입력되기 전에 여성들이 몇 주 동안 문제를 프로그래밍하고 공들여 실행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했다. 언론은 저 마법 같은 15초 외에 코딩과 디버깅을 하는 시간, 프로그래머와 유지 보수 작업자와 오퍼레이터의 노동 시간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제니퍼 라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시연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했던 숙련된 노동과 그 일을 해낸 능력 있는 여성의 성별 모두 기자 회견과 후속 취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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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새로 쓰인 날 같았다. 하지만 그 역사는 우리를 내친 다음 트랙에 버려두고 가버렸다.” 베티 진이 수십 년 뒤에 자서전에 쓴 말이다.


🔖 저 덧없는 배열의 건축가들 — 킬로걸, 컴퓨터 걸, 오퍼레이터, 프로그래머, 그들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 이 세상을 바꾸었다. 문화 이론가 새디 플랜트의 우아한 표현대로, “과거에 컴퓨터가 달래고 구슬러야만 작동하는 트랜지스터와 밸브로 이루어진 방대한 시스템이었을 때, 그것을 작동한 것은 여성이었다. 컴퓨터가 실리콘 칩의 소형 회로가 되었을 때, 그것을 조립한 것은 여성이었다. 컴퓨터가 사람에서 진짜 기계가 되었을 때, 그것이 실행하는 소프트웨어를 작성한 것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컴퓨터가 살과 피가 있는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을 때, 그 몸은 여성이었다.”


🔖 추크슈피체산 산자락에서 남성 참석자들은 컴퓨팅 산업을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며 프로그래밍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내놓았다. 그들이 일으킨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의미에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이제부터 프로그래밍은 소프트웨어 공학으로 불릴 것이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부적응자나 여자들이 제멋대로 헤집고 다니는 야생화 들판이 아닌 공학의 한 갈래로 취급될 것이다. 공학자는 확실한 자격증을 가진 직업이지, 그림자 같은 사제직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전반에 걸쳐 전문 저널과 학회, 고용 관행, 자격증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팅의 전문적인 지위가 더 폭넓게 재협상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컴퓨팅 세계는 전문화될수록 은연중에 더 남성화되었다. (...) 역사학자 네이선 엔스멩거에 따르면,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여성의 일로 시작했더라도, 결국엔 남성적으로 만들어져야 했다.”